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애니메이션/역사 (문단 편집) === 애니메이션 전문잡지 창간 === 젊은이의 잡지를 만들려고 했던 월간 OUT은 우주전함 야마토 팬클럽을 운영하며 회지를 낸 적이 있던 [[히카와 류스케]]에게 부탁해 [[우주전함 야마토]] 특집호를 발간했는데 이게 엄청나게 팔리자 몇 번 간을 보고나서 완전 애니메이션 잡지로 전향하였으며 1980년대까지 꾸준히 팔렸다. 애니메이션 소개와 일러스트뿐 아니라 애니메이터나 감독과 독자의 소통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이 잡지는 지금도 온라인에 자료가 남아있을 정도이다. 이후 <[[아니메쥬]]>(1978~), <아니멧크(AniMec)>(1978-1987), <마이아니메>(1981-1986), <아니메디아>(1981~), <[[뉴타입(잡지)]]>(1985~)같은 전문잡지가 차례차례로 창간되었다. 정작 <월간 OUT>은 [[도쿠마 쇼텐]], [[반다이]]나 [[KADOKAWA]] 같은 미디어 회사를 등에 입은 잡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각종 정보공개에서 우선순위가 뒤로 밀렸고 1995년 5월호로 휴간(사실상 폐간)되었다. 애니메이션 전문잡지가 등장하면서, 작품 자체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연출가와 애니메이터가 소개되고 관심이 모아지고 주목하게 되었다. 이 시절 가장 주목받는 감독은 [[데자키 오사무]]였다. 《[[내일의 죠/애니메이션|내일의 죠]]》 TVA부터 시작한 영화적인 화면 연출과 '데자키 연출'이라 불리우는 독창적인 연출 수법은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79년 개봉된 극장판 《[[에이스를 노려라!]]》는 데자키 연출의 총집대성이다. [[토미노 요시유키]]도 아니메 팬들에게 지지를 받는 스타 감독이었다. 작가성을 마음껏 발휘한 《[[기동전사 건담]]》과 《[[전설거신 이데온]]》으로 애니메이션은 [[문학]], [[영화]] 못지않는 표현 장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1981년 2월 22일 [[신주쿠]] 서쪽입구역 앞 알타 앞에서 열린, 기동전사 건담 극장판 공개 기념 행사 '아니메 신세기 선언 대회'에는 1만 명이 넘는 팬들이 모여들었고 신문에도 보도되면서 아니메가 어린이들만의 것이아니라 청년 문화의 하나라고 인지되는 계기가 되었다. [[카나다 요시노리]]도 이 시절 주목받은 스타 애니메이터였다. 기존의 애니메이션의 표현 문법을 깨뜨리고 개발한 독특하고 신선한 표현 기법을 선보였는데, 이것은 그 기법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애니메이터 추종자 집단을 낳았다. 글을 웃기게 쓰는 걸로 유명한 [[아시다 토요오]]도 잡지 코너로 인기를 얻었고 화려한 미사일 발사 장면으로 [[이타노 서커스]]라는 별명을 얻은 [[이타노 이치로]] 역시 주목받는 애니메이터 중 한 명이었다. 이타노 서커스란 이름부터가 애니메이션 잡지에서 유래된 것이다. 한편 [[린타로]] 감독의 [[은하철도 999]] 극장판은 애들이나 보는 줄 알았던 만화영화가 그 해(1979년) 개봉된 극장 영화 흥행수입 1위를 차지해서 화제가 되었고, 같은 해 개봉한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은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작년에 [[미래소년 코난]]도 연출한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신인 감독에게 아니메 팬들이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